매운맛 고추
고추는 남미(南美), 지금의 볼리비아에서 6000년 전부터 재배되었다. 잉카(Inca)인들은 이 매운 열매를 '아히'라고 불렀고, 멕시코의 아스텍인들은 '칠리'라고 바꿔 불렀다. 15세기 말 서유럽 사람들이 이 대륙에 왔다가 돌아가는 배에 고추를 싣고 갔다.
유럽인들은 고추를 후추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붉은 후추(red pepper)'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후추에 비해 너무 매우면서도 분말로 만들기 어려운 단점 때문에 처음에는 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로 이용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무역선을 타고 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유입된 고추는 새로운 식용작물로 재배되었다. 그후 1543년 일본 규수에 고추가 유입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고추가 조선 반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수광은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고추가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하여 '왜개자(倭芥子)'라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추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18세기 이전에는 고추를 즐겨 먹지는 않았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4명 가운데 1명은 고추를 매일 먹는 것으로 추산되며 우리나라, 태국, 멕시코, 중동 등에서는 요리에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다. 고추는 그 맛에 따라 핫 페퍼(hot pepper)와 스위트 페퍼(sweet pepper)로 구분한다. 핫 페퍼는 매운맛이 강한 품종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고추가 여기에 속한다. 스위트 페퍼는 피망이 대표적인 예이며, 핫 페퍼에 비해서 매운맛이 훨씬 약하다. 핫 페퍼는 다른 말로 레드 페퍼, 칠리 페퍼, 혹은 캡사이신 페퍼(capsicum pepper)라 한다. 보통 길이와 매운 정도, 생산지에 따라 분류되는 고추의 품종은 50종이 넘는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먹는 고추(고춧가루 포함) 1일 섭취량은 1998년 5.2g에서 2005년에는 7.2g으로 40%가량 증가했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태국의 경우, 하루 5g 안팎이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추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고추의 톡 쏘는 맛은 고추 내벽에 있는 캡사이신(capsaicin)이라는 화학 성분 때문이다. 캡사이신은 고추의 씨가 붙어 있는 흰 부분(태좌)에 많다. 매운 청양고추엔 캡사이신이 일반 고추의 6∼7배나 들어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조사(2007년)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시중 김치에 담긴 캡사이신이 0.6∼0.8㎎%에서 2.0∼3.0㎎%로 2∼3배 증가하여 수년 사이 김치가 훨씬 더 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가정 요리책을 통해서 본 생선찌개(4인분 1냄비 기준)에 들어가는 고추 사용량을 비교해 보면 1913년 발간된 『조선요리제법(방신영 저)』에는 고추장 1큰술로 기록되어 있으나, 2001년 『600년 서울음식(김숙년 저)』에는 고추장 1.5큰술+고춧가루 1큰술로, 그리고 2003년 『한식가정요리(최신애 저)』에는 고추장 3큰술+고춧가루 3큰술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고추의 사용량이 80년 사이에 6배나 늘어났다.
효용성
고추의 매운맛은 통증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痛覺)에 속하며 입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질감으로 인하여 점점 중독성을 갖는다. 심리학자들은 고추(매운맛) 중독은 담배(니코틴) 중독과 원리가 흡사하다고 한다. 매운 고추는 롤러코스터처럼 통증을 느끼되 실제로 몸에 상처는 입지 않는 데서 오는 심리적 쾌감과 몸이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한 뇌(腦)가 분비하는 엔도르핀에 의해 더 매운 고추를 먹게 된다. 즉 우리 몸은 매운 고추로 야기되는 통증(痛症)에 대응해 신경 호르몬 엔도르핀(포유류의 뇌하수체에 들어 있는 진통효과를 지닌 물질)을 방출한다. 엔도르핀은 은근한 도취감과 황홀감, 기분 좋은 고추 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청양고추의 경우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미국 타바스코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당분은 2배나 더 들어 있어 매콤하면서 단맛이 나는 특유의 맛을 갖고 있다. 또한 고추가 입안의 느낌을 더욱 좋게 하고 미각(味覺)을 예민하게 함으로써 음식이 실제보다 더 맛도 좋고 향도 뛰어나다고 느끼게 한다.
고추를 덜 맵게 먹으려면 우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이나 밥, 빵, 감자 등 탄수화물 식품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한편 술안주로 고추를 먹으면 캡사이신이 더 많이 흡수되어 매운맛을 더 강화시킨다. 캡사이신이 콜레스테롤과 관절염, 당뇨병, 근육통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발표도 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에서는 캡사이신이 혈전 생성을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캡사이신은 또한 울혈을 풀어주고 점액을 감소시킴으로써 감기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고추에는 비타민 A · C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은 지방대사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도 좋은 식품이다. 이런 효과를 반영하듯이 요즘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고추, 고춧가루, 김치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있다.
풋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는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증진하여 면역을 강화한다. 하루에 풋고추를 2개 정도 먹으면 좋다.
그러나 고추를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캡사이신이 위를 자극해 위의 보호막인 점액의 분비가 줄어들고 위 점막의 혈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극이 오래 계속되면 위염이나 위궤양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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